Jul 22, 2013

달달

필리핀에서의 꿈은 늘 달다. 흰 쌀 죽에까지 설탕을 타먹는 달달한 사람들. 우리랑 비슷한 구석이 있다면 음악취향정도? 거리에서는 심심찮게 애절하고 달콤한 팝송들은 한국의 R&B 소울을 연상시킨다. 들리는 노랫소리에 리듬을 맞추다가 문득 드는 생각은 결국 우리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것. 그냥 우리를 설탕에 한번 두른 후 기름에 튀기면 필리핀이 되는 거고 필리핀을 기름한번 쫙 뺀 후 고춧가루와 간장양념에 한번 팍팍 버무리면 결국 그게 그거가 아닐런지..? 어쨌든 미국 보다는 필리핀이 우리나라와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서양인의 오똑한 코와 인형같은 금발머리, 푸른색 빛깔의 눈알이 우리나라 십대들의 동경을 부른다면 필리핀에서는 우리의 허연 피부와 특히 여자들의 허벅지가 매력적인가보다.

문득 드는 생각

촌스러워져가는 나의 모습이 사뭇 당황스럽다

이상을 실현하기위해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마음이 고갈되어가는 것 같다

마냥 고 1처럼 어려지는 듯한 이 불안한 기분은?



필리핀 두마게테 '13

햇볕에 쪼여도 비가 와서 빨래가 눅눅하다.


선풍기에도 말려봤지만 소용없는 비린 옷 냄새는 차라리 친근하게 여기기로 했다. 비가 오니까 나지막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부르는 ‘What a Wonderful World’ 가 듣고싶다.

어제아침 공원주변을 한 바퀴 돌다가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필리핀 전통 빵을 발견했다. 효모 없이 약간의 코코넛만 들어갔단다. 달콤함이 소박하기 그지없는 이 빵은 내 혀에 친근하다. 필리핀 음식은 유난히 너무 짜거나 아니면 달은게 많다. 여행 중 단 한번도 ‘고향’의 음식이 그리워본 적이 없는 나는 이상하게 요 며칠 새 된장찌개가 먹고싶다. 10 아이들은 얼큰한 매운탕과 김치찌개가 생각난단다. 우리나라사람은 달콤하기보다는 얼큰한 부족인건가 ? 

유리창과 바퀴 네 개가 달린 자동차... 안에서 바라보는 두마게테의 밤길은 트라이시클에서와 다르게 느껴진다. 심지어 가로등의 불빛이 모이니까 모든 게 조화로워 보이는 착각마저 일으킨다. 결국 촛불이 두어 개 켜 있을 뿐 그 외에는 집이 있는지 없는지 모를 만큼 까만색인 다리 밑 판자촌을 지나서야 나는 잔혹한 현실로 돌아온다.

현실은 잔혹하다. 쇄골에, 팔뚝에, 발목에, 발등에 예쁘게 헤나문신을 새겨보고 싶은 아이들 15명을 데리고 20분 전 눈으로 찍어둔 노점상 아저씨를 찾아갔는데 도착하니 아저씨가 경찰들에 둘러싸여있다. 단속에 걸려서 가지고 온 형형색색의 장신구를 경찰트럭 뒤에 실은 아저씨는 왠지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무기력하게 떠나버렸다. 화가 난 희석샘은 사진으로 순간을 기록했다.

비가 오면 울상을 짓기도 전에 금방 비가 그친다. 그만큼 짧게 온 비지만 굵게 내린 빗방울은 이미 하수를 흙탕물로 만들어 버렸다. 얇은 흰 머리카락의 가지런함이 당분간 머릿속에 맴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