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 21, 2013

산부인과

세균성 질염이 벌써 한달을 넘어가고 있다.
그동안 들른 병원 수만 4개, 그것도 한국에서 3군데였고, 인도까지 와서도 다녔다.
총 방문은 6횟수. 

지난 번 만난 인도의 여의사는 씩 웃으며 나를 침대에 눕혔다.
무엇인가가 쑥 몸 속으로 들어온다. 
"아직 분비물이 있으니 검사를 해봅시다. 긴장하지 말아요."
말이 떨어지는 동시에 나의 몸은 긴장한다.

조그마한 면봉이 내 몸 안을 스친다.
노오란색의 끈적해보이는 액체를 플레이트에 쓱 바른다. 
그 와중에 질 쪽이 아파온다.
처음에 집어넣은 그 무엇인가가 아직 안빠진 모양이다.
벌써 6번째지만 이 기분은 전혀 익숙하지 않다.
옆의 간호사가 내 불편한 표정을 보더니 의사에게 눈길을 준다.

불편할 게 없는 의사는 느긋하게 면봉을 처리하고
나에게 몸을 돌려 그 무엇인가를 단번에 빼낸다.
고개를 살짝 들어 앞을 보니 끄티 뭉툭한 쇠파이프가 보인다.
직접 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갑자기 속이 안좋다.
저런쇠덩이가 내 질에 삽입되었다니 순간 불쾌함이 찌릿한다.
내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의사는 일회용 장갑을 벗으며
"옷 입고 나오세요. 설명해 드릴게요."
아무 표정없는 미소를 짓고 나간다.

주섬주섬 옷을 입고 나가니
의사는 자궁암 자료가 담긴 팜플렛부터 건낸다.
"겁먹지 말아요. 그냥 꼭 한 번은 백신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말씀드리는거에요."

내 질염은 어쩌고 암이야기부터 꺼내는 걸까. 겁을 먹고
"상태가 많이 안좋아요?" 물으니 아니란다.
하지만 질염과 상관없이 백신은 꼭 맞으란다.

엥. 어이가 없다.
질의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면서 말하면서 굳이 암을 경고하는 연유가 뭘까 

쥐어주는 팜플렛을 마지못해 받아들고 일어나는 나에게
안경너머로 의사는 단호한 눈빛을 보내며말한다.
"앞으로는 콘돔을 꼭 사용해요. 항상. 그렇지 않으면 괜히 이런 일들이 생길 수 있어요."

의사는 세균성 질염이 암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검사를 해보자고 했지만
불필요하다고 느껴 거절했다. 이미 바이러스가 없다고 지난번 한국에서
8만원이나 들여서 한 검사에서 음성반응 확인 후 검사를 후회하고 있었는데
똑같은 미끼를 던진다. 질염은 아주 흔하게 걸리는 거라는 상식에도 불구하고 
최악의 상황인 "자궁암"의 경고를 내걸면서 값비싼 검사를 넌지시 강요한다.

병원을 나오니 정오의 햇볕이 아스팔트 길을 지글지글 달구고 있다.
몸에 으스스함을 느끼며 나는 혼이 반쯤 새나간 사람마냥 과일가게를 지나,
빵가게를 지나, 차이가게에 멈췄다.

차이한잔을 앞에두고 멍해진 머리통을 좌우로 흔들어본다.
의사의 날카로운 눈빛이 다시 떠오른다. 회색의 쇠파이프도 생각난다.
의사와의 15분은 나를 완전 넉다운 시켰다.
흐늘흐늘해진듯한 몸의 근육들이 느껴진다.
막연한 초조함으로 골반쪽에서 살이 파르르 떨려온다.

Jan 19, 2013

인도 2013

기억의 매력은 서구의 "앞을 향해 흐르는 시간"을 거스르는다는데 있다
5년만에 들어마시는 인도의 먼지투성의 공기는 
가슴촉촉하던 그 때의 나의 감성을 고스란히 불러온다
웃던 날보다 울던 날이 더 많았던 시절
인도는 그 때 나를 말없이 보듬어 주었다

인도의 매력은 부드러움에 있다
손가락 끝으로 조물조물 거려야 제맛이 나는 달(dhal)만 먹어도 이해할 수 있을거다
밥이랑 잘 섞어서 동그랗게 만든 뒤 입으로 쏙
집어넣는게 바로 남쪽의 스타일이란다
케랄라에서는 흔하게 봤지만 푸네에서는 나이프와 포크의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다
 
음악만 들어도, 음색에서도
인도의 부드러움을 느낄 수 있다
하나의 음이 다른 음으로의 이어지는 "불투명함"은 상대방에 대한 관용이 아닐까 

어딘가 성숙함이 느껴지는 나라
수많은 관광객들과 외국인들에게 그래왔듯
인도는 나에게도 밀려오는 친근함으로 다가온다

번잡하기 그지없는 숱한 상점들을 지나며 
미로같은 골목들 속에서 길 잃는 것에 맛을 들인다

노상방뇨하는 릭샤아저씨 등을 곁눈질하다 
길 한구석에 마련된 가네쉬 신전 앞에서 잠시 숨을 돌려본다

무턱대고 질주하는 오토바이들 사이를 비집으면서
어느새 길을 다 건너버린 나는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다  

단 것을 좋아하는 인도사람들
5년전 인도에서 만난 아니타가 문득 생각난다
채식은 견딜 수 없다며 고픈 배를 설탕 덩어리인 인도 과자들로 채우더니
어느날 당뇨를 판정받아 프랑스도 돌아갔다
원래 잠복중이던 당뇨가 설탕과다섭취로 인해 급격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 것 같았다
 
인도의 신들도 입이 달달할까?  
인도사람들은 신들에게 향과 과일을 주로 바치지만 디저트도 바친다
그러고보니 몇년전 엄마따라 간 수원 동네에 있던 절의 부처는
엄마 손 파이, 칸쵸랑 커스터드를 앞에 두고 앉아 있었다
신들은 단 걸 좋아하나 보다

인도는 나에게 이번에 무엇을 말하려는 걸까
마음은 무엇을 감지하고 있나
세포들은 무엇에 반응하고 있나
의식은 무엇을 깨닫고 있나

나의 무의식은 무엇을 찾아 인도에 왔을까 ?
아사나를 수행하며 내 자신에게 묻는다

부드러움을 어떻게 삶에서 실천할 수 있을까?

rumi

An Empty Garlic

You miss the garden,
because you want a small fig from a random tree.
You don't meet the beautiful woman.
You're joking with an old crone.
It makes me want to cry how she detains you,
stinking mouthed, with a hundred talons,
putting her head over the roof edge to call down,
tasteless fig, fold over fold, empty
as dry-rotten garlic.

She has you right by the belt,
even though there's no flower and no milk
inside her body.
Death will open your eyes
to what her face is: leather spine
of a black lizard. No more advice.

Let yourself be silently drawn
by the stronger pull of what you really love.

Jan 12, 2013

내려놓는다는 것

'삶'이라는 통로를 지나며 경험한다
우주의 법칙에 따라
흐르고 흘러야 하는게 인생이라는 것을

'일상'이라는 징검다리를 건너며 습득한다
서로를 내려놓는 법과 자신을 받아들이는 법을

내 손에 잡힌다 해서 내 것이 아니므로
내 손에서 미끄러져 나간들
서러울 것이 무엇이 있겠냐만은

내 마음 속에 뚜렷하게 찍힌 
어떤 감정도 느낌도 또 그것들이 남기고 간
세월의 그 어떤 흔적들도
내 것이라 부를 수 없다면

정말 우주의 법칙이 그런 것이라면

Jan 7, 2013

여행을 하는 이유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새로운 꿈을 꾸기 위해
마음과 생각에 휴식을 주기위해
삶을 사랑하기 위해
내 자신을 내려놓는 연습을 하기 위해
상상력에 자극을 주기위해
상상을 현실로 옮길 수 있는 용기를 얻기 위해 
나의 상식을 뒤엎기 위해
새로운 상식을 만들기 위해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해
함께 호흡하는 연습을 하기위해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더 깊은 우정을 나누기 위해
큰 그림을 보기 위해
더 많이 웃기 위해
치유를 위해
용서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평등을 연습하기 위해
현실과 더 가까워지기 위해
현재의 내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좀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tadasana

can you stand firm on the ground?
can you stand on your both feet? equally pressing ?
can you be in touch with the mother earth?

try to balance pressure on both feet.

오늘 아침 요가수행중 선생님의 말씀.
나는 두 발로 땅에 설 수 있을까? 

Jan 5, 2013

태백산맥


개떡 반쪽을 오물거리며 복남이는 비장한 각오를 내뱉는다
'나넌 후제 어런이 되면 죽어도 농새 안 질껴'
'나가 기어코 불쌍한 우라부지 원 풀어디질껴'

하지만 옆에 앉아있는 옥자에게

개떡을 자신의 몫보다 더 큼직하게
뚝 떼어 주는 모습에서는 정작 비장함 보다는 수줍음이 묻어난다.

고여오는 침을 꿀떡 삼키며 옥자는
복남이가 건네주는 개떡 반쪽을
다시 반을 갈라 '더 묵어라' 라며 복남이에게 도로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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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야 할 정도 많고 풀어야 할 원도 많은
가슴 속에 못다한 이야기가 항상 메어있는 한국사람.

가난에서 시작된 설움이라는 씨앗은
우리의 마음 한 켠에서 깊은 뿌리박혀 묵어온지 오래다.
동시에 그 똑같은 씨앗은 개떡 하나도 반으로 갈라먹을 줄 아는
가슴찡한 씀씀이도 함께 한국인의 마음에 박아주었다.

'정'이라는게 이런건가.

한국에 온지 어연 1년이 다 되었다.

태백산맥을 읽으며 문득 스쳐가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