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 22, 2013

필리핀 두마게테 '13

햇볕에 쪼여도 비가 와서 빨래가 눅눅하다.


선풍기에도 말려봤지만 소용없는 비린 옷 냄새는 차라리 친근하게 여기기로 했다. 비가 오니까 나지막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부르는 ‘What a Wonderful World’ 가 듣고싶다.

어제아침 공원주변을 한 바퀴 돌다가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필리핀 전통 빵을 발견했다. 효모 없이 약간의 코코넛만 들어갔단다. 달콤함이 소박하기 그지없는 이 빵은 내 혀에 친근하다. 필리핀 음식은 유난히 너무 짜거나 아니면 달은게 많다. 여행 중 단 한번도 ‘고향’의 음식이 그리워본 적이 없는 나는 이상하게 요 며칠 새 된장찌개가 먹고싶다. 10 아이들은 얼큰한 매운탕과 김치찌개가 생각난단다. 우리나라사람은 달콤하기보다는 얼큰한 부족인건가 ? 

유리창과 바퀴 네 개가 달린 자동차... 안에서 바라보는 두마게테의 밤길은 트라이시클에서와 다르게 느껴진다. 심지어 가로등의 불빛이 모이니까 모든 게 조화로워 보이는 착각마저 일으킨다. 결국 촛불이 두어 개 켜 있을 뿐 그 외에는 집이 있는지 없는지 모를 만큼 까만색인 다리 밑 판자촌을 지나서야 나는 잔혹한 현실로 돌아온다.

현실은 잔혹하다. 쇄골에, 팔뚝에, 발목에, 발등에 예쁘게 헤나문신을 새겨보고 싶은 아이들 15명을 데리고 20분 전 눈으로 찍어둔 노점상 아저씨를 찾아갔는데 도착하니 아저씨가 경찰들에 둘러싸여있다. 단속에 걸려서 가지고 온 형형색색의 장신구를 경찰트럭 뒤에 실은 아저씨는 왠지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무기력하게 떠나버렸다. 화가 난 희석샘은 사진으로 순간을 기록했다.

비가 오면 울상을 짓기도 전에 금방 비가 그친다. 그만큼 짧게 온 비지만 굵게 내린 빗방울은 이미 하수를 흙탕물로 만들어 버렸다. 얇은 흰 머리카락의 가지런함이 당분간 머릿속에 맴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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