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 22, 2012

시 (2010) / 이창봉



어느 소녀의 자살로 시작해

어느 할머니의 자살로 끝난다.



두 죽음에 공통점이 있다면 더이상 살 이유를 찾지 못했다는 것.

다른 점이 있다면 소녀는 삶에 대한 원망으로 죽음을 택했고

할머니는 삶을 사랑하기 때문에 선택한 자살이라고 생각한다.




나이 예순을 훌쩍 넘었지만 할머니는 어린 아이의 감수성을 간직하고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어느 하루를 마치 어제처럼 추억할 만한,

잎사귀의 흔들림에 공감할 줄 알고,

매정한 손주딸에게 한없는 부드러움으로 대할 줄 아는 품위있는,

봄의 색으로 자신의 몸을 치장할 줄 아는,


  - 감수성은 결국에는 부질없는 것이었을까 - 




결국 할머니는 철없는 손주를 감싸안아주지도 못했고

성폭력 사건의 당사자 어머니에게 제대로 사과를 한 것도 아니고

돈 3000만원에 이 사건이 묻힌다는 것에 대한 부당함을 피력하지도 못하지 않았는가.




치매 판명 후 자신이 간병해오던 중풍걸린 노인네를

목욕탕에 앉혀놓고 섹스를 한다.

분명 사랑없는 섹스지만 감정없는 섹스는 아닌 것 같았다.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그 동안만큼은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 같다.

그 때의 감정에 충실한 것 외에는.



그래서 할머니의 자살로 끝나는 영화의 결말이 더 처절하지 않았나.





자신의 뜻과는 너무 다르게 흘러가는 삶의 끝자락을 의미있게 마무리 짓고 싶어서.

적어도 마지막 순간은 자신의 기억으로 붙들고 싶어서 자살을 택한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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