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 29, 2018

로힝야 소녀와의 첫 만남 , 2018년 2월 초

따뜻함 .

가시덩굴 한 가운데 서 있는 그들이 내게 지어준 웃음의 느낌.

1978년 부터 지속적으로 반죽되어 온, 배제와 차별의 밀가루가 빚어낸 제노사이드라는 화려한 만찬 . 양 손에 포크와 나이프를 쥐고 있는 이들에게 로힝야의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는 걸까. 로힝야의 고립감이 낳은 외로움. 이 외로움은 긴 메아리 되어 검은 하늘의 별처럼 닿지 않는 곳에서 홀로 빛이 난다.

쿠투팔롱 난민캠프의 입구에서 마주친 빨강색 옷을 입은 아이와의 만남이 우리의 발길을 이끌었다. 몇 마디 나누다가 친해진 아이를 무작정 따라가자는 별빛의 제안 . 반신반의 했지만 아이와 친해지자 아이는 스스럼 없이 우리를 집까지 안내한다 .

거적, 대나무, 끄나풀로 얼기설기 엮은, 겉으로 보기에는 언덕배기에 가까스로 서 있는 듯한 집이다. 하지만 집 안으로 들어서니 정돈되고 다부진 손길이 구석구석에서 느껴진다.

집안의 어르신이 우리를 맞이해 주신다. 비틀너트 (환각을 일으키는 씁쓸한 맛이나는 열매) 잎사귀라도 대접하고 싶으신지 플라스틱 통을 꺼내시지만, 애꿎은 통은 비어있다. 이윽고 언어가 서로 다른 우리의 서투른 대화가 시작된다.

캠프에 도착한지는 6개월 - 지난 8월 말 미얀마에서 일어난 대량학살 직후 건너온 약 70만명 중 한 가족이다. 길을 안내해 준 아이는 캠프로 오는 길에 엄마를 잃었다고 한다. 서툰 영어로 우리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어르신의 얼굴에는 짙은 그림자가 깔려있다 .

가족들의 애틋한 정서는 집 안의 공기의 선선한 정적과 버무려져 방 한 가운데 앉아있는 우리를 에워싼다.

정적의 흐름 속에 나는 조심스레 플룻을 꺼내보인다. 음악소리를 듣는 그들의 눈빛은 호기심으로 시작해 점차 지긋해진다.

연주를 마치고 길을 안내 해 주었던, 내 옆에 앉아있던 그 아이에게 플룻을 권해본다. 악기를 선뜻 받은 아이는 취구에 입술을 대고 마치 뜨거운 국 한 그릇 호호 불어대듯 정성을 다해 악기를 탐색한다.

플룻이 닿은 아이의 입술 끝에서 멜로디가 삐죽 댈 때마다 가족들이 웃음을 터뜨린다. 새소리를 내보자며 아이와 나는 플룻불기에 몰입한다. 무언가에 빨려들어갈 수 있는 것이 특권이라고 생각해 보기는 처음이다. 아이의 온기가 가족들 모두를 데운다. 분위기가 한 껏 달아오르자, 서로 몇마디 모르는 영어 단어와 로힝야 어를 섞어가며 농담도 터져 나온다.

오늘 아침, 생전 처음 만난 우리가 얼굴을 맞대고 온전히 웃을 수 있는 시간은 1시간이나 되었다.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는 길목에 단체 사진 한 컷을 찍기로 한다. 사진기 앞에서 별빛이 숫자를 외친다. '원, 투 , 쓰리 !' 그러지 난민 학교에서 영어를 배운 아이들이 화답한다. ' 포, 파이브, 식스, ... 나인, 텐 !'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