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의 길을 선택하고 나니
그 길이 다시 두 갈래로 나뉜다.
한국에 온지 10개월이 되었을즈음 어떤 지인이 나에게
"정인은 말하는게 약간 본인이 아니라 다른사람이 하는 말을 비슷하게 읊는 것 같아"
라고 말해주었다.
'어, 어떻게 알았지?'
17살에 미국에 도착한 나는 그들의 언어, 말투, 억양, 표정, 걸음걸이, 숨소리까지 ...
마치 스폰지가 물을 흡수하듯 흡수했다.
갓난아기가 걸음을 배우듯 나는 마음씨 좋으신 미국어른들의 보호와 도움 안에서
미국스톼일...을 9년간 내면화했다.
헌데 내 것이 되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시간이 흘러도 실제로 온전히 내 것이 되지는 않았다.
물론 비교적 어린 나이에 다른 문화를 체험한 덕에
기존에 가지고있던 문화적 편견을 버릴 수 있었고
나에게 있어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게 해준 9년의 세월은
내가 타인을 이해하는 데 관용을 길러준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대학원에까지 가고나니 실망감에 휩싸여버렸다.
어느새 나 스스로가 백인들의 앵무새가 되어버렸다는 느낌을 떨치기가 어려웠다.
그 때는 무엇인가에 이끌려 모두 다 그만두었다.
음악도, 학업도, 미국생활도. 다 그만두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용감한 척 우리나라 시골에 덜컥 내려갔지만
사실은 나는 피하고 싶었다. 내가 혐오했던 한국의 모습
- 내 스스로의 얼굴일지도 모르는 - 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아서였다.
시골에서의 경험은 의외였다. 내가 꿈꿔온 모든 이상들이 모인 곳이었고
나는 구름위를 붕붕 날아다니는 것 처럼 행복한 감정을 거의 매일 느꼈다.
그런데 그 곳에서 '내가 다른사람의 말투를 흉내낸다'는 말을 들었다.
처음으로 들은 말이었지만듣는 순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이미 한국사람이면서도 진짜 한국사람이 되는 게 늘 두려웠다.
그리고 지금도 두렵다.
지난 3년간 가장 힘들고도 중요했던 두 시기에는 늘 미국인을 옆에 붙잡아 두었다.
간디학교를 나올 때는 미국인 남자친구가 한국에 있어 나를 애정과 따뜻함으로 지지해주었고, 간디학교를 나오고 부천에 새 둥지를 틀 무렵에는 미국에서 온 내 요가 선생님은 4개월동안이나 나를 성숙함과 용기로 보호해 주었다. 나는 아직 걸음마를 떼지 않은 아이처럼 그들의 소맷자락을 놓는게 두려웠다.
진짜로 한국인이 되어버리면 난 과연 잘 살아갈 수 있을까 ?
내 마음에 어떤 공간에는 이런 두려움이 막연하게 있다.
1주일 전 4개월 동안 한 방을 쓰던 요가 선생님이 미국으로 돌아갔다.
선생님은 갈 때 많은 눈물을 보이셨고 또다시 오겠노라고 약속하셨다.
어쨋든 나는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소중한 것들을 받고 선생님을 그렇게 보내드렸다.
그리고 3일전 사랑하는 남자친구에게 연인으로서의 이별을 선언했다.
이미 9월달에 헤어졌지만 우리는 미련이 서로 많이 남았다.
그래서 한달 전 다시 연락을 하게 되었고 우리는 또다시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가 대화를 나누고 또 나누던 우리의 미래는 어느새 오래되어버렸다.
더이상 우리의 관계에 있어 진전은 있을 수 없다는 걸 내가 알았던 건 직감이었다.
나는 한국을 미워하고 두려워하면서도 한국에 있고 싶어한다.
한국사람이 헷갈리고 복잡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도 한국사람이기 때문에 연민이 생긴다.
이 좁은 땅에서 발붙이고 정붙이고 살라니 가슴이 턱턱 막혀오지만
미국처럼 넓은 땅에서는 길을 잃을 것 같다.
무엇보다 남 흉내내는 걸 그만두고 싶다.
9년간 감겨온 나의 뿌리박힌 습관의 태엽을 풀어내고 싶다.
끼이이이이익...
고질적인 습관이래도 한국에서는 해 볼 수라도 있을 것 같다.
미국에 가면 난 또다시 앵무새가 되어야 한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한들
때깔좋은 앵무새가 되려고 미국에 가기는싫다...